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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0. 10世 〉5. <요재공>현릉참봉공휘유신묘표(顯陵參奉公諱由信墓表)
1. 문헌 목록 〉10. 10世 〉7. <요재공>태인공사실유지기(泰仁公祠室遺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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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요재공>통훈대부행곡성현감도암공휘찬묘지(通訓大夫行谷城縣監陶庵公諱纘墓誌)
通訓大夫行谷城縣監陶庵公諱纘墓誌 夫泉之發源 祖宗之肇業也樹之茂枝子姓之繼述也相須者之物情常如此豈有他理哉惟我趙氏淳昌者皆以侍中公諱璋爲上祖三傳而至玉川府院君諱元吉以恭讓朝原勳見時自靖退隱與圃牧併稱長子判書公諱瑛與弟副正公諱瑜共守罔僕之節累徵不就太宗以父子三賢褒美之後五世而至于公諱纘號陶庵出宰谷城壬丁之亂子姪倡義殉節率季子自南原移于寶城仍居焉配淑人全州李氏進士居亨女也墓本蘆洞面甘井負癸原同兆子參奉由信孫縣監之漢次第繼葬于同原世稱吉崗有子若孫世濟其美嗟乎源深而派長根固而枝藩豈不信然乎古有碑泐不可讀今將改竪謹叙世德及顚趾後以追先裕後之意與諸族相勗焉 民國四十五年歲癸卯三月日 十五世孫 平奎 謹述 容奎 謹書 통훈대부행곡성현감도암공휘찬묘지(通訓大夫行谷城縣監陶庵公諱續墓誌) 대범 샘의 발원은 조종의 조업이요 나무의 가지 뻣는 것은 자성의 계술이니 서로 주고받고 쓰는 자의 물정이 떳떳이 이 같으니 어찌 다른 이치가 있으랴. 오직 우리 순창조씨는 다 시중공 휘 장(璋)으로 상조를 삼으니 三전하여 옥천부원군 휘 원길(元吉)에 이르러 공양조의 원훈으로써 때를 보고 자정하여 은퇴하니 포은 목은으로 병칭하다. 장자 판서공 휘 영(瑛)은 아우 부정공 휘 유(瑜)로 더불어 함께 굽히지 않는 절개를 지키고 여러 번 불러도 나가지 않으니 태종이 부자三현이라고 포양하셨고 다음 五대후에 공에 이르니 휘 찬(纘)이요 호는 도암(陶庵)이시다. 곡성현감으로 나가셨다. 임진 정유란에 아들 조카가 창의 순절하나 계자를 데리고 남원으로부터 보성에 와서 살으셨다. 배위는 숙인 전주이씨 진사 거형의 녀라. 묘는 본군 노동면 감정리 계좌원에 합폄하였다. 자는 참봉 유신(由信)이고 손은 현감 지하(之漢)이신데 차제로 동원에 계장하였으니 세상이 명당이라 칭하다. 아들과 손자가 그 미덕으로 세상을 건지니 차홉다. 근원이 깊어야 물줄기가 길고 뿌리가 굳어야 가지가 번성한 것이니 어찌 미덥지 않으랴. 옛 비가 있어도 일그러져 글자를 분별 못하니 이제 장차 고쳐 세워 삼가 세덕과 전지를 펴고 다시 추선유휴의 뜻으로 가족과 더불어 서로 힘쓰리로다. 민국四十五年세계묘三월 일 十五세손 평규(平奎) 근술 용규(容奎) 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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